게으른 국가대표 산책선수의 훈련일지

 산다는 감각이 갑자기 낯설어 질 때, 우리의 자아와 삶 사이에 시차가 있는 것처럼 온 몸이 얼얼할 때, 나의 존재가 나도 모르는 이중생활을 할 때, 어떻게 무엇을 해야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삶과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나와 함께 전지훈련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낯선 곳에서 게으르게 산책하며 이미지와 대화와 다른 삶들을 수집하면서 이미지와 글들을 움직여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래, 너는 제대로 살고 있니?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전지훈련의 빼곡한 일지를 공유한다. 삶과, 침묵과, 빛과 움직임이 스쳐 지나가는 타국의 풍경들 속에 담긴 의미를 읽고 소설, 에세이, 희곡, 필름카메라, 디지털카메라, 핸드폰카메라, 모든 것들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표현한 ‘나’의 필사적인 살-ㅁ, 찾기여정을 통해 ‘잘 살고 있다’는 생생한 감각을 되찾기를 바란다.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기자, 학예사, 대안학교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는 작가. 

Das Leben vergeht.(삶이 지나간다.)

Das Schweigen verghet.(침묵이 지나간다.)

Die Lichts –Bewegung vergehen.(빛과 움직임이 지나간다.)

*살-ㅁ, 너는 제대로 살고 있니? 잘 살고 있니? 그보다, 살고는 있니? 때때로 나는 살-ㅁ과는 전혀 개별적인 존재가 된다. 기쁨이나, 슬픔, 외로움 같은 감각도 모두 떨어져 나가고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서는, 어, 저기 내 가죽이 간다, 아, 저기 내 영혼이 운다, 앗, 내 외로움이 또 방으로 기어들어 간다, 엇, 내 웃음이 또 빙글빙글 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장관을 방관하는 나는 또 다른 나의 자아인가, 아니면 혼이나 넋인가, 정신을 차리려 애써 보면 발바닥부터 곪아서 벌써 썩은 물에 발목까지 잠겨 있다. '잘'이나 '제대로' 같은 미사여구가 감개무량해 질 무렵, '살고 있다'라는 감각이 동상에 걸린 듯이 뚝,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나는 중력도 부력도 없이 분침 초와 초침 초 사이에 끼여서 버둥대며 이미 그대로 멈춰버린 살-ㅁ의 정중앙에서 '잘'만 '제대로' 가는 시간을 보고 있었다. 다섯 개의 손목시계가 모두 멈추어 버리고, 권태롭게 잠든 정신을 깨워줄 알람도 없다. 방구석에 진공포장된 내 살-ㅁ,이 숨이 모자란다고 버둥대서 시차가 벌어지는 곳으로 떠날 생각을 했다. (4p)

정신없이 살다 보면 갑자기 허무해지는 이상한 우울감이 문득 찾아온다. 어떤 자들을 그것을 ‘번아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우울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결국 문제는 열심히 살고 있는 ‘나’와 진짜 ‘나’의 시간이 따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세상은 지나치게 빠르고 인간의 삶은, 생각보다 조금 더디다. 그 시간차를 매꾸기 위해 발악을 하며 산다. 

 나는 내 발악의 기록을 샅샅이 남기기로 작정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지침이나 위로나 타산지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냥 구체적인 목적이 없이 읽어도 좋다. 결국 타국의 이야기고 이미지들이고 또한 대화들이니 울적한 기분에 훌쩍 떠난 여행같이 읽어주어도 좋을 것이다. 전지훈련 삼아 떠난 타국에서 소심하고 게으른 자아를 가진 한 작가가 무엇을 수집했는지 여기 다 전시했으니 한번 둘러 보시기를.